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자 지구 (문단 편집) ==== 대몽골 & 대십자군 거점 ==== 1260년 5월부터 가자에는 바이다르 휘하의 몽골군이 주둔하였다. 반격에 나선 바이바르스는 7월 26일 몽골군을 축출하고 가자를 장악하였다. 다만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 곧 가우르 지방으로 향하였다. 그후 대군과 가자에 당도한 쿠투즈는 잔여 호라즘 용병 등과 합류하였고, 바이바르스와 함께 [[아인잘루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그때 활약한 맘루크 중 하나였던 아쿠쉬 알 바를리 알 아지지는 가자 일대 해안을 영지로 하사받았다. 그러나 곧 술탄위에 오른 바이바르스의 숙청에 직면하자 북상한 그는1261-62년에 알레포와 하란 등지에서 미래의 칼리파 [[알 하킴 1세]]를 옹립하는 등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기도 한다. 한편 1263년 다른 제후인 카라크의 우마르 역시 훌라구로부터 보스라 ~ 가자의 영지 및 이집트 정복 지원 약속을 받은 혐의로 숙청되었다. 그후 가자는 바이바르스의 대십자군 원정 때에 거쳐가는 도시로 언급된다. 1265년 2월 9일 카이사레아 점령과 1266년 5월 사파드 점령 시에 지나갔다. 후자의 경우 바이바르스는 가자에서 [[칼라운]] 휘하 7천 병력을 홈스로 파견하였고, 그들은 이후 트리폴리를 기습한다. 1279년엔 칼라운 본인이 바이바르스의 후계자들을 폐위하고 술탄이 되었다. 이에 이듬해 다마스쿠스 총독 순쿠르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그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산자르 알 할라비 휘하 정규군에게 가자에서 패배하였다. 1281년 가을 몽골군이 재차 침공해오자 칼라운과 순쿠르는 화해하고 함께 2차 홈스 전투에 임하였다. 비록 초반 맘루크 군은 패퇴하고 그 잔병이 다마스쿠스, 사파드, 가자, 심지어 일부는 이집트에 닿았으나 순쿠르 병력의 분전으로 반격에 성공해 승리하였다. 1286년 여름, 시리아 순행에 나선 칼라운은 10월 5일까지 가자에 장기 주둔하였고 카라크를 들른 후 15일만에 다시 가자로 돌아왔다. 11월 4일 부관 키토부카 알 만수리가 합류하자 칼라운은 그와 카이로로 귀환하였다. 1289년 트리폴리를 함락한 칼라운은 이듬해 아크레 원정 준비 중 사망하였고, 그를 계승한 [[칼릴]]은 1291년 3월 대군과 함께 출정하여 가자에 주둔하였다. 그곳에서 카라크의 아미르 바이바르스 알 만수리와 합류한 칼릴은 4월 초엽 가자를 떠나 아크레를 포위하였고, 격전 끝에 함락시키며 십자군을 일소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